이야기하는 것이 더 섬세하게 다뤄지기를 바랍니다.
고양이와 함께 산다고 하면 나이를 묻는 경우가 많은데, "어디 보자, 2013년 1월에 태어났으니 이제 열 살이 됐다"고 대답하니 속이 좀 떨린다. '사람 나이로 따지면 몇 살이냐', '고양이는 몇 살이냐'는 질문이 다시 나올까 걱정이다. 이 말이 이어지자 통통한 마음을 감춘다는 반응을 보인다. 우리 고양이는 지금 나와 비슷한 나이다. 같이 늙어가고 있다.사람의 나이를 물었을 때도 이런 생각이 들었는지 기억을 더듬어봤지만 나이를 떠나 불편한 적은 없었습니다. 두 사람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요. 고양이의 나이를 묻는 질문이고 가벼운 관심을 보이는 호감형 표현일 뿐인데 악의가 없다는 그 말들이 왜 무례하게 느껴질 때가 많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데는 초기의 불안감과 슬픔이 통하지 않는다고는 할 수 없지만 불편함의 기저에는 이런 마음이 자리잡고 있었을 것입니다. 누군가에게서 숫자 하나씩 빼듯이 고양이의 남은 인생을 그렇게 쉽게 계산하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고양이의 평균 수명은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한 것입니다. 우리 고양이의 수명도 그 수치에 가까울 것 같습니다. 여기에는 어떤 논쟁이나 감정이 개입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양이와 함께 사는 사람에게 고양이의 나이를 묻거나 이야기하는 것이 더 섬세하게 다뤄지기를 바랍니다. 예를 들어 고양이와 함께 살 때 대화가 같은 방향으로 흐르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말 둑을 쌓으면서 몇 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인생에 비해 묘목이란 얼마나 짧은가. 언젠가는 고양이가 먼저 나를 떠날 것입니다. 등에 드문드문 보이기 시작한 하얀 털들을 보면, 나는 슬픔을 조용히 마음 밑바닥에 가라앉히며 가까운 미래를 예감합니다. 그러나 현재는 언제나 미래보다 크고 선명합니다. 우리의 하루는 어둑어둑한 내일을 걱정하며 둘러앉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루 종일 일상은 시끄럽고 바쁩니다. 지금도 고양이는 끊임없이 장갑 한 켤레를 깨물며 빨리 던져달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나는 나의 급한 마감일에 개의치 않습니다.그렇게 하루하루 꾸준히 하루의 희로애락을 쌓아가는 것이니 언젠가는 우리가 헤어지고 남은 것의 이름이 슬픔만은 아닐 것입니다. 아홉 번의 인생을 모두 마치고 떠나는 고양이와의 이별을 아름답게 노래한 '아홉 번째 여행', 주먹밥 모양의 크고 하얗고 폭력적이고 낭만적인 고양이를 기억하는 '내 고양이는 너', 훗날 어디서든 우연히 다시 만난 길고양이를 만나기를 고대하는 '어느 날, 우리는' 등 그림책을 보면 눈물이 나고 마침내 웃음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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